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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스터의 활동 현황

대한민국 정육점 리모델링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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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20-12-07 15:03 조회24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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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정육점 리모델링 【1】

        


“고기는 냉장고에”라고 쓰인 아크릴 팻말이 아무것도 진열되어 있지 않는

쇼케이스 앞에 부착되어 있었고, 가게 안으로 들어서면 시뻘건 불빛에

담배를 입에 물고 있던 아저씨가 손님을 맞습니다.

“돼지고기 한 근 주세요.“ 하면, 냉동고 안에서 꽁꽁 얼은 고기 덩어리를 꺼내다가

비닐 필름을 벗겨내고 냉동 육절기로 얇게 썰어 시커먼 비닐봉지에 담아 주었습니다.


1970년대 말 정육점의 모습이었습니다.


1981년 6월 21일, 내일이면 독일 행 비행기를 올라타야 하는 날이었습니다.

두려움뿐이었죠.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독일의 육가공회사에 기술 연수생으로

파견되는 행운을 얻어 6개월을 기다리다,


드디어 출국하는 날이 다가왔습니다.

같은 과 조교를 하던 친구에게 부탁을 하였습니다.

“지금 내 발이 떨어지지 않아 도저히 내일 공항에 나가질 못하겠다.

내 엉덩이에 몽둥이찜질을 좀 해 주렴” 퍽~ 퍽~ 으윽!


붉은 머리 파란 눈을 가진 독일 친구들과 함께 육가공장에서의

 연수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새벽 6시에 출근하여 하루 종일 알루미늄 스틱에 돼지창자에 담겨 쏟아져 나오는

한 뼘 길이의 소시지를 거는 일만 하였습니다.


처음 6개월 내도록 ㅠㅠ


주 5일 근무를 마치고, 토요일이 되면 시내 구경삼아 장이 서는

시청 앞 광장으로 나가곤 하였습니다.


 농부들이 직접 재배한 각 종 농산물과 수제 육가공품, 낙농품 등을

트럭이나 트레일러에 가득 싣고 나왔습니다.


바글바글 거리는 인파 속을 헤집으며 둘러보고는

이 골목 저 골목을 돌아다니며 눈요기를 하였습니다.


직업을 속일 수는 없었던지 가장 눈에 들어오는 상점은 “메쯔거라이”였습니다.

독일식 정육점 메쯔거라이! 쇼윈도우 역시 냉장 쇼케이스에

생전 처음 보는 슁켄이라 불리는 생햄들과 건조발효 소시지인 살라미들이

예쁘게 데코레이션 되어 있었고,

각양각색의 치즈와 과일 잼 같은 병조림들도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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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점 안으로 들어가 보니,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정육상품 이었습니다.

소고기와 송아지고기, 그리고 돼지고기 순으로 지방이 하나도 없는 채로 덩어리채 쟁반에 담겨 있었고, 이어서 1인분씩 포션 커팅하여 올리브오일에 재웠다가 쟁반에 진열할 때 표면에 데코시즈닝을 뿌려 놓은 조미스테이크들과 함부르거 스테이크나 미트볼 같은 분쇄육제품들도 보이고, 소·돼지·닭고기에 고운 빵가루를 입힌 슈니첼(돈가스류)도 눈에 띄었습니다.

그 옆에는 길쭉길쭉한 모양의 훈연소시지들이 쟁반에 가득 쌓여 있는가 하면, 겉이 하얀 구이용 소시지들도 다양하게 진열되어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의 순대처럼 생긴 블룻부어스트와 돼지 간으로 만든 레버부어스트, 그리고 예쁜 단면을 자랑하는 젤라틴 소시지로서 슐체부어스트들도 눈길을 끌고 있었습니다.

쇼케이스 뒤쪽으로는 식빵처럼 생긴 플라이쉬케제류가 대여섯 가지 놓여 있고, 그 앞에는 얇게 슬라이스한 콜드컷류로서 비어슁켄, 약드부어스트, 볼로나부어스트, 슁켄부어스트 등이 쌓여있어 손님이 원하는 만큼만 긴 포크로 찍어 포장해 주고 있었습니다. 이뿐이 아니었습니다. 들어오며 보았던 건조발효소시지로서 살라미, 세르발랏부어스트, 란트예거 등과 함께 슁켄스펙, 누스슁켄, 락스슁켄, 크녹큰슁켄, 슈바이네 바우흐 등의 생햄&베이컨 들이 새빨간 색깔을 자랑하며 진열되어 있었습니다.

이와 더불어 다양한 종류의 치즈들과 함께 신선한 채소와 햄이나 소시지 조각들이 섞인 햄샐러드들이 놓여 있었고, 그 옆 칸은 온장 쇼케이스로서 금방 구워 내온 따뜻한 메뉴들이 진열되어 있었습니다. “임비스”라 불리우는 간편식사 코너 였습니다.

슈니첼이라 불리우는 돈가스도 튀겨져 있었고, 두툼하게 썰어 팬에 살짝 구운 플라이쉬케제와 무첨가 구이용 소시지 브랏부어스트들도 구워져 있었습니다. 갈은 고기에 양념하여 손으로 주물럭거린 햄버거의 원조라는 후리카델렌 메뉴도 보였습니다. 이 고기 메뉴들은 모두 한 결 같이 접시에 독일식 양배추김치라는 사우어크라우와 오븐구이 감자가 함께 담겨져 한 끼 식사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이처럼 독일식 정육점, 메쯔거라이에서는 정육상품 뿐만 아니라, 비가열 양념·분쇄육제품과 햄·소시지·베이컨 등의 가열 육제품들이 다양하게 진열·판매되었고, 이 육제품들을 이용한 즉석메뉴들까지 조리하여 판매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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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년도 독일 정육점의 모습이었습니다.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문화적인 충격이었지요.

독일 육가공회사의 기술 연수생으로 현장에서 혹독한 실습생활을 견디어 내면서 ‘내가 이 기술을 배워 무엇에 쓸 것인가?’ ‘내가 여길 왜 왔지? 라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불현 듯 머릿속을 스치는 생각이 하나 떠올랐습니다.

‘대한민국의 모든 정육점을 독일의 메쯔거라이처럼 바꾸어 보자’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지금 해야 할 일이 무엇일까? 생각이 여기에까지 이르자 그 답을 얻는 것은 너무도 쉬웠습니다. ‘그래, 독일의 식육 마이스터가 되자’ ‘독일 마이스터의 기술로 우리나라에서 독일식 메쯔거라이를 성공시키고, 그 성공 노하우를 많은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자’

그리하여 아무도 가본 적 없는 길을 선택하게 되었고, 앞서 연수생으로 나와 끝내고 나서는 대부분 독일 대학에 진학하여 박사학위 과정을 선택했던 선배님들과 달리 저는 독일의 직업학교를 선택하였던 것입니다. 우리나라 같으면 고등학교 과정에 해당하여 16세 나이에 들어가는 학교였습니다.

10살이나 어린 동생 벌 되는 친구들과 함께 일주일에 하루를 학교에 모여 이론교육을 받기 시작하였습니다. 주중 4일은 메쯔거라이나 육가공회사에 견습생으로 취업을 하여 현장에서 실기훈련과정을 이수하는 일·학습 병행제 도제 양성 프로그램이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3년 과정을 이수하고, 졸업시험으로서의 ‘도제 자격시험’에 합격을 하여야 졸업과 동시에 도제자격을 취득하는 시스템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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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엔 도제자격을 취득하고, 또 다른 마이스터 밑에서 3~4년간의 도제학습 기간을 거쳐야 마이스터 시험에 응시할 자격을 주었습니다.

도제자격을 취득한 채 제일제당 백설햄에 특채되어 귀국하였고, 3년 동안 신제품 개발담당으로 근무하며 도제학습 기간을 이수하였던 것입니다. 그 후 1987년 2월, 다시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위치한 식육전문학교 마이스터시험 준비과정에 입학하여 2개월간의 담금질을 통과하여야만 했습니다.

처음 1개월은 시험과목에 대한 이론교육을 시행하면서 중간 중간에 지정된 메쯔거라이에 나가 실기시험을 보았습니다.

돼지 지육 2분체를 1시간 내에 모두 발골하고, 각 부위별로 진열상품이 되도록 정형하기가 첫 번째 실기시험이었고, 이어서 소 전지 4분체를 1시간 내에 뼈 한 마디 한 마디씩 모두 발골 하여 정형해 놓는 것까지가 두 번째 실기시험이었습니다. 세 번째로는 마이스터가 보는 가운데 유화형 소시지 한 품목을 정하여 배합표 작성하기부터 원료 및 향신료 계량하기, 분쇄 및 세절·유화하기, 충전하기, 훈연하기까지 시연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다음 1개월은 한 달 내내 이론시험만 보는 것이었습니다.

전공이론에 해당하는 식육학, 식품미생물학, 식육가공학, 전공수학 등과 법률·경제·경영에 해당하는 각 종 법규, 즉 헌법, 민법, 상법, 형사소송법, 공정거래법, 근로기준법, 환경법, 식품위생법 등과 재무제표 작성법, 원가계산방법, 점포 마케팅, 판매촉진 등, 그리고 직업교육학에 해당하는 청소년 심리학, 카운슬링기법, 기술전수기법 등 모두 30개가 넘는 과목의 시험을 치러야만 하였습니다.

한 사람의 온전한 수공업분야의 자영업자를 양성하기 위하여 필요한 모든 영역을 가르치고 검증하는 과정이었습니다.

1987년 4월 30일, 우리나라 최초의 독일 식육 마이스터가 탄생하는 순간이었습니다.

103명 중 13등으로 호명되어 강단에 불려나가 시험위원장으로부터 마이스터 자격증을 받아 들고는 뒤로 돌아서는 순간 앉아있던 동료들이 동시에 모두 기립하여 축하의 박수를 쳐주는 것이 아닙니까? 까만 머리의 동양인은 저 한명이었기 때문이었을 겁니다. 평생을 잊지 못할 장면이었습니다.

마이스터가 되어 돌아온 2년 후, 제일제당 백설햄을 나와 1989년 12월, 올림픽선수촌 아파트 상가에 “마이스터델리”라는 독일식 메쯔거라이를 처음 개설하였었던 이래, 지난 2018년 4월, 강동구 명일동 소재 한국4-H회관 1층에 또다시 “마이스터델리”라는 이름으로 신개념 정육점+레스토랑을 오픈할 때까지 근 30년 동안 모두 여덟 번의 도전과 실패가 이어졌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축적된 노하우를 바탕으로 ‘한국형 메쯔거라이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었고, 대한민국 정육점을 모두 리모델링할 필살기를 이제부터 여러분들과 공유하고자 합니다. 기대해 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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