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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정육점 리모델링【2】'89년의 마이스터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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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20-12-08 11:05 조회20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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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정육점 리모델링 【2】

-1989년의 마이스터델리-

        


1982년 2월 어느 날 아침, 기술연수생으로 근무하던 독일 육가공회사에

출근하였더니 스포츠 신문 1면에 대문짝만한 사진이 한 장 실린 것을 보며

사람들이 수군거리고 있었습니다.


독일 남서부도시 바덴바덴에서 차기 올림픽 개최지를 선정하는 IOC 총회가 개최되어

대한민국 서울이 뽑히던 순간, 사마란치 IOC 회장이 SEOUL이라 적힌 종이 띠를 펼쳐

 보이며 “쎄우~ㄹ”이라 소리치는 장면이었습니다.


당시 KOREA라는 나라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국가였었고,

 간혹 기억하는 사람도 6.25 전쟁을 치렀던 나라,

또는 북한 김일성 체제의 공산국가가 더 잘 알려져 있었습니다.

그러던 대한민국이 올림픽을 개최하게 되다니,

감개무량해 하던 기억이 납니다.


1988년 10월, 금메달 12개로 4위를 기록하며 막을 내린 ‘서울올림픽’은

대단히 성공적인 대회로 우리나라를 전 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올림픽을 치른 나라로서 이제 우리나라도

금방 선진국이 되는 줄 알았습니다.


1989년 2월, 5년간의 백설햄 개발팀 근무를 정리하고,

경기도 포천군 일동면에서 3천두 규모의 양돈장을 운영하고 계시던

 선배님께서

양돈 계열화 사업을 추진하시겠다고 저를 스카웃 하셨습니다.


독일식 메쯔거라이 모델을 체인화 하는 프로젝트였습니다.

그 선배님도 꽤나 진취적인 마인드로 앞서 가는 분이셨던 것이지요.


그해 5월,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매 3년 마다 개최되는 국제식육박람회(IFFA)를

 방문하여 전시장에서 육가공 기계들을 구입하였습니다.


국내에서 받았던 오파 견적가에 비해

거의 절반 가격에 구입할 수 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래서 예산 금액에 맞춰 기계능력을 2배로 늘려 계약을 했었습니다.

일반적인 독일의 메쯔거라이가 보유한 기계들 수준으로 빠짐없이

구비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때만 하여도 식육가공업 허가를 받으려면 축산물가공처리법에

근거하여 면적 제한이 330㎡ 이상이어야 하였고, 폐수처리장 시설을 갖추어야 하며,

수의사를 위생관리인으로 채용하여야만 하였습니다.


따라서 육가공장은 포천군 일동면 소재 양돈장 부지 내에 정확히 330㎡ 규모로

신축하게 되었고, 판매장을 서울에 개설하기 위하여 시장조사 및 상권분석을 해본 결과,

송파구에 위치한 올림픽선수촌 아파트를 배후 상권으로 하는

상가에 입점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10월 초순 육가공장이 완공되어 시운전과 동시에 생산 작업에 돌입하였습니다.

가락동 축산물공판장에서 중매인을 통해 암소 한 마리를 지육으로 구입하여

일동 육가공장에서 직접 발골·해체하여 정육으로 판매할 부위들은 때마침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소개되었던 수축필름(Cryer Vac)을 구입하여 진공포장을 한 후,


90℃ 되는 뜨거운 물에 30초간 담갔다 꺼내는 방식으로

수축포장을 하여 0~2℃ 되는 냉장고 내에 보관함으로써

요즈음 흔히 시행하기 시작한 웻에이징을 하였던 것입니다.


그것도 40일간을 말입니다.


하고 싶어 했던 것이 아니라 판매장 오픈이 계획 보다 늦어지는 바람에

숙성기간이 길어지게 되었던 것이지요.


돼지는 포천도축장을 이용하여 자가 사육한 돼지를 도축한 후 지육으로 입고하여

직접 발골·해체 한 다음 지방 함유량에 따른 가공육의 분류를 하였습니다.


그리고는 방부제나 전분 등 고기 아닌 재료 또는 건강에 해로운 식품첨가물은

가급적 배제한 웰빙 햄·베이컨·소시지들을 가내수공업 방식으로 제조하였습니다.


구이용 화이트소시지들은 아예 발색제까지 첨가하지 않아

그야말로 순수한 내츄럴 소시지들이었습니다.


삼겹, 목살은 판매용 정육을 일부 남겨 놓고는 모두 베이컨과

로스트포크로 가공하였고,


 양념육, 돈가스, 햄버거 패티를 비롯하여 샌드위치용 콜드 컷류와

훈연 소시지 등을

모두 합해 약 50여 종을 제조하여 판매장에 보낼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어렵사리 마련한 판매장은 올림픽선수촌 아파트상가 내에 국기계양대가 있었던

 넓은 광장 쪽에 18평 규모의 매장이었습니다.

가게 이름은 독일식 정육점 “마이스터델리”라 지었습니다.


작은 조립형 냉장고 하나와 당시에 국내 처음으로 소개된

독일식 유럽형 냉장 쇼케이스 16자 짜리와 4자 짜리

 온장 쇼케이스를 수입하여 설치하였습니다.


냉장 쇼케이스에는 40일간 숙성시킨 한우 등심, 안심, 채끝과 사후강직이 지난

 냉장 삼겹, 목살, 돼지갈비 등 정육상품이 진열되었고,

육가공장에서 공급된 양념육, 분쇄육, 햄, 소시지 등의 육가공품도 함께 진열되었습니다.


냉장 쇼케이스와 온장 쇼케이스 사이에는 작은 규격의 조리기구, 그리들러, 후라이어,

컨벡션 오븐 등이 설치되어 육가공품들을 활용한 간편식 메뉴들

(핫도그, 햄버거, 샌드위치, 돈가스 등)을 조리하여

온장 쇼케이스에 진열하였습니다.


판매장의 맨 끝 쪽에는 스탠드형 테이블과 다리가 긴 의자들이 배치되어

 메뉴를 먹을 수 있도록 디자인 되었습니다.


독일 메쯔거라이 마다 운영하고 있는 “임비스 코너”였었던 것입니다.

비록 면적은 18평 밖에는 되지 않는 길쭉한 형태의 공간이었지만

 “메쯔거라이”가 갖추어야 할 품목들은 모두 취급하는

새로운 개념의 정육점이었던 것입니다.


12월 초, 드디어 “마이스터델리”가 오픈하였습니다.

함께 사업을 준비하셨던 선배님이 당시 대한양돈협회의 이사님으로

 활동하고 계셨으므로 축산관계 인사들이 많이 다녀가셨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어찌 보면 축산계열화의 시범사업 모델이었었던 것입니다.

나중에 축산업협동조합 회장이 되셨던,

당시엔 종축개량협회 송찬원 회장님께서도 다녀가셨으니까요.


그 때 가장 많이 들었던 얘기가 ‘이런 매장은 우리나라에선 한 10년 뒤에나

될까 말까한 콘셉트야.’라는 수근거림이었습니다.


앞에서는 “야~ 정말 멋있는데! 우리나라 정육점도 이제 이렇게 바뀌는구나.”

하면서 좋아했던 사람들이 돌아서서는

자기들끼리 뒷담화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정말 신기하게도 8년 뒤 경기도 구리시에 처음으로 독립하여

오픈했던 한우전문점 “훔메”의 개업식에 오셨던 손님들 중에서도

이와 똑같은 말씀을 하시는 분들이 계셨었습니다.


솔직히 저는 속으로 ‘무슨 소릴, 난 적어도 50년 앞을 내다보고

 선택한 사업모델인데...’라며

그런 얘기에 전혀 개의치 않았었던 것 같습니다.


한겨울 모진 바람이 광장을 쓸고 지나가는 날이 많다보니

아파트 쪽의 상점들은 손님이 버글버글 하는데 광장 쪽엔

도통 손님들이 나오질 않는 것이었습니다.


 보증금이나 집세가 저렴하다는 이유로 주 동선을 비켜난 점포를 얻었을 때 지불해야 할

시간과 노력의 한계가 어디까지 인지는 나중에서야 깨닫게 된 사실이었던 것입니다.


이 추운 겨울이 지나고, 따뜻한 봄날이 오면 좋아지겠지 하는 마음으로

스스로를 위안하며 하루하루를 보내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만히 있을 수 없으니

 인연을 찾아 영업을 뛰어야만 하였습니다.


회사의 대표가 되신 선배님의 소개로 이태원에 있는

 ‘올드 져머니’라는 호프 레스토랑의 주인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주인이 당시 요들송으로 유명하신 김홍철님 이셨습니다.

가지고 간 브로셔도 보여드리고, 만들고 있는 육가공품의 품질에 대해서도

열심히 설명해 드렸습니다.


가만히 듣고 계시던 사장님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내시더니

“이 정도면 저 해밀턴 호텔 뒤편 골목길에 있는

”스위스샬레“라는 레스토랑엘 가보세요.


 그곳에서는 매주 수요일 저녁에 고급 호텔

 외국인 주방장들의 모임이 있답니다.”


그 다음 주 수요일, 넓은 은쟁반에 햄과 콜드 컷 슬라이스 제품과

 구이용 소시지, 훈연 소시지 등을 예쁘게 데코레이션 하여

팜플렛과 브로셔도 함께 갖고 ‘스위스샬레’를 찾아갔습니다.


일명 오디션을 보러 떨리는 마음을 누르면서 입구를 들어서니

 이미 대여섯 명의 외국인들이 모여 앉아 맥주를 마시고 있었습니다.


은쟁반을 들고 그들 앞에 다가서서 공손히 허리 굽혀 인사하고,

김홍철 사장님의 소개로 여러분들에게 내가 만든 육제품 품평을 받고 싶어

이렇게 찾아뵈었노라고 차근차근히 독일어로 설명을 하였습니다.


물론 ‘우리나라 최초의 독일 식육마이스터 자격을 취득한 사람이고,

독일식 메쯔거라이를 이제 막 개업 하였다.’ 라는 설명도 잊지 않았습니다.


반갑게 나를 맞아주신 그분들은 갖고 간 햄·소시지들을 천천히 음미하며

고개를 끄덕거리고 계셨습니다.


시간이 지나가며 몇 분이 더 오셔서 한 열 명쯤 되었던 것 같았습니다.

 모두들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원더풀” “분더바” “엑설런트”

저마다 한마디씩 하여 주셨던 기억이 납니다.


알고 보니 이 분들은 전 세계 호텔 주방장들의 모임인

“흰모자클럽”의 회원들이셨습니다.


처음 본 저에게도 그 클럽에 가입하라며 신청서 양식을

가져다주시는 것이었습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무사히 오디션을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그 다음 날부터 전화로 주문이 들어왔습니다. 신라호텔 뒤편에 있는

 ‘서울클럽’, 남산에 있는 ‘하이얏트 호텔’,

삼성동에 있는 ‘인터콘티넨탈 호텔’ 등에 납품이 시작되었습니다.

호텔 로비에 있는 델리샵에서 판매할 육제품들이었습니다.


한편으로는 ‘풀무원‘에서 방부제나 발색제가 들어있지 않은

무첨가 소시지에 대한 납품 상담이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나름 생각하기에는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좋은 육제품을 찾는

고객은 분명히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열심히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회사의 대표이신 선배님이 주변 인사들의 부정적인

사업성 평가에 대한 얘기들을 귀담아 들으시곤

개업한 지 4개월 밖에 되지 않은 시점에서 사업을 접어야 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이게 왠 날벼락인가 싶었지요. 청천병력이었습니다.


그 후 4개월간은 회사를 정리하는 일을 준비하여야만 했습니다.

지난 해 2월 백설햄을 나와 3월에 메쯔거라이 사업계획서를 작성하였고,

5월에 독일 박람회에 직접 참관하여 육가공 기계·설비들을 저렴한 가격에 구입하였고,


10월에 가공장을 준공하여 시험생산 과정도 없이 곧바로 본 생산을 하여

12월에 판매장을 오픈하였으며,

이제 막 거래처들을 개척하여 매출을 올리기 시작하고 있었는데...


8월의 어느 날 아침, 눈을 떠보니 실직자가 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이제 갓 태어난 둘째 아들과 세 살배기 큰아들 얼굴이 머릿속에 떠오르며

앞이 캄캄해지는 경험을 처음 해보았습니다.


“내 다시는 자본가와 손잡는 일은 없을 것”이라 결심하였습니다.

[ 독일 프랑크푸르트 개최 국제식육박람회 IFFA 전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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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9년의 마이스터델리를 30년만에(2018년) 명일동에 소환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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