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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스터의 활동 현황

대한민국 정육점 리모델링 【4】한우전문점 "훔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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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20-12-08 12:07 조회17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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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정육점 리모델링 【4】

한우전문점 "훔메"

           


1997년 2월, 건국햄을 나와 무작정 승용차를 몰고 전국 일주를 떠났습니다.


영동고속도로를 타고 원주에 들러 상지대학교 교수로 있는 친구를 만났습니다.

건국햄을 정리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와 앞으로의 계획에 관하여

이야기를 나누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는 다시 동해를 거쳐, 경주, 남해, 구례, 남원, 대천으로

일주일간의 긴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1978년, 군대생활 말년에 ‘기술자로 입신 하겠다’라는 결심을 하던 일하며,

복학해서 기능사 2급 시험에 매진하던 시간들,


졸업과 함께 독일 육가공회사에 기술연수생으로 파견되어 고생하던 일,

‘독일 마이스터가 되어 한국의 정육점을

모두 이들의 메쯔거라이처럼 바꿔 놓겠다.’라는 꿈을 갖게 되던 순간,


그리고 1987년 한국인 최초로 독일의 식육마이스터 자격증을 받아들던 순간과

5년간의 제일제당 백설햄 근무를 정리하고,


양돈 계열화 사업의 일환으로 포천 일동에서 양돈업을 하고 계셨던

선배님과 함께 독일식 메쯔거라이 콘셉트의 “마이스터델리”를

올림픽 선수촌 아파트 상가에 개설하였던 일,


오픈한 지 8개월 만에 사업을 접고,

모교인 건국대학교 내에 건국햄사업부를 창설하여


축협시범판매장과 서울 시내 고급백화점 마다

‘건국햄 델리코너’ 16개소를 개설하며 겪었던

수많은 사건들이 주마등처럼 머릿속을 스쳐지나가는 것이었습니다.

 

1997년 3월부터 경기도 여주시 신북면 산등성이에 자리한

 마케팅 전문회사 “이음”에 빈 공간을 하나 얻어 출퇴근을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8미터가 넘는 천정높이를 가진 촬영 스튜디오를 비롯하여

사무동과 세미나 및 숙박동 그리고 살림집 해서

 4개의 건물과 넓은 잔디 정원을 갖춘 멋진 회사였었습니다.


대표님은 대학의 1년 선배 되셨는데,

그 선배의 아버님께서 옛날 은행나무 아저씨라는 별명으로

혈액순환제 광고에 출연하셨던 분이셨고,

사촌 형님께서는 당시 마케팅이라는 개념조차 없었던 업계에서

 “이가솜씨”라는 기획사를 운영하며,


‘브리태니커’ 백과사전과 ‘캠브리지 멤버스‘ 신사복 등의 광고·마케팅으로

이름을 날리셨던 분이고,

그 형님 밑에서 광고·마케팅 공부를 선배가 하셨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음”의 대표와는 저녁마다 소주잔을 기울이며 밤늦게까지 토론을 이어갔습니다.


우리나라 축산업계 전반에 관한 이야기들을 내가 알고 있는 한

모두 끄집어내 테이블에 올려놓고 의견을 피력하면,

다음 날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프레젠테이션 자료로 만들어

선배가 제시하는 식이었습니다.


거의 2개월여에 걸쳐 축산업계 관련 분석 작업이 이루어졌습니다.

경운기가 보급되기 전까지 농가마다 외양간에 일소 한 두 마리는

 식구처럼 기르며 애지중지 키우던 모습과 농가부업으로


뒤뜰에 돼지우리를 만들어 음식물 남은 것으로 죽을 쑤어

사료로 먹이던 풍경들에서부터


우루과이 라운드 협상이 종료되고,

세계무역기구(WTO) 체제가 발동되기 시작한 1993년부터

축산 당국의 정책사업으로 ‘국내 축산물 유통구조 현대화’가

그동안 수입 쇠고기 판매 이익금으로 조성된 축산발전기금을 활용하여

대대적으로 펼쳐지기 시작하는 변화의 모습까지.


축산 계열화 사업에 따른 양돈계열화 업체로서

미원의 ‘하이포크’,

선진의 ‘크린포크’,

도드람축협의 ‘도드람포크’,

부경양돈조합의 ‘포크벨리’ 등


냉장 돈육의 브랜드화가 진행되며, 저지방육의 대일본 수출단지화 사업이

추진되었을 뿐만 아니라 전국의 양돈조합 마다

즉석육가공 시설자금을 지원하여 소규모의 가내수공업형

‘즉석판매제조가공업’을 운영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당시 현장 기술 인력들을 ‘건국햄’에서

속성과정으로 교육·훈련시켜 배치하기도 하였습니다.


당시에 나름 성공적으로 운영되던 양돈조합 육가공사업장은

강원영동양돈조합, 대전충남양돈조합, 부경양돈조합 등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조합에서는 초기에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었는데,


이유는 시설자금 받아 설비투자 해놓고,

인원 배치하여 가공·판매 시스템을 갖추고는

독립채산제 형식으로 운영하며

수익발생을 요구하는 사업장이 많았던 것입니다.


경험도 일천한데다, 즉석에서 만든 제품은

그곳에서 밖에 판매할 수 없는 제도적인 문제로

매출실적이 지지부진 했던 것이었습니다.


 일 년, 이 년을 운영하는데도 이익을 만들어 내지 못하자

 3년차에 가서는 대부분 포기하고 마는

안타까운 모습들을 보기도 하였습니다.


그동안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았던 도축업계에도

각 도마다 한 곳에 현대식 대형 도축장인 LPC를 설립할 수 있도록

거액의 시설자금이 지원되어 그야말로 혁명적인 변화가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전국에 약 120개소 이상의

중소 재래식 도축장들이 있었는데 대부분 ‘바닥치기’라 하여,

뾰족한 망치로 급소를 타격하여 바닥에 쓰러트려 놓고,

목을 찔러 피를 받아내고는 가죽 벗기고 배를 갈라 내장을 들어내는 방식으로


 소를 도살하였으며, 돼지는 전기집게로 급소를 집어 바닥에 기절시켜 놓은 뒤에

목을 찔러 피를 받았고, 피 범벅인 채로 탕박조에 담겨 표피를 무르게 한 후,

탈모기로 털을 제거하고,

거꾸로 매달아 머리를 통으로 잘라내고, 배를 갈라 내장을 꺼냈습니다.

내장 세척실이 따로 없어 작업장 한쪽 구석에서

세척작업을 하던 모습이 기억납니다.


이러한 상태로 도살된 지육으로는 냉장유통은 커녕

여름철 집단 식중독을 일으키는 일을 다반사로 일으키곤 하였습니다.


‘축산물 유통구조 현대화 사업’에 빼놓을 수 없는 것이

 ‘한우전문점 시설 지원사업’이었습니다.

생산자가 소비지에 식육판매점을 개설하는 경우 점포 당 3억 원의

장기 저리 자금을 지원해 주는 사업이었습니다.


대부분의 생산자 조직이 축산물브랜드를 만들고,

이들의 판매망 구축을 위하여 서울·수도권에 너도 나도 축산물브랜드

전문판매점을 개설하는 붐이 일어났던 때가 있었습니다.

결국에는 대부분의 생산자 브랜드 판매점들이 문을 닫고 말았지만 말입니다.


그 이유는 너무나 간단하였습니다. 우선은 식육을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사업을 하는 경우가 많았고,


더군다나 냉동육일 때는 그럴 수 있다 쳐도 냉장육을 취급하면서

식육에 대한 전문지식과 경험이 없을 때에는 판매하여

이익을 내야 할 식육을 색깔이 금방 변하고,

냄새가 나기 쉬우므로 폐기함으로써

발생하는 기회손실이 매우 클 수밖에 없었습니다.


두 번째는 정부지원 자금으로 개설하다보니

권리금이 붙은 좋은 목의 점포를 얻을 수가 없었고,

권리금이 없는 B급 상권이나 신축건물에 입점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손님을 유치하는데 많은 어려움이 있었으리라 예상되는 대목입니다.


마지막 세 번째 이유는 저부가가치의 단순 절단판매 방식의 답습이었습니다.

점포의 규모는 커지고, 인테리어와 시설투자 비용은 높아졌으며,

인건비는 올라갔는데 식육을 취급하는 방법이 단순하여

 손님이 원하는 인기부위 위주로만 썰어 팔고 있었으니

 부가가치를 창출하지 못하여 수익이 나올 리가 없었던 것이었습니다.


어쨌거나 건국햄을 나와 여주 산골에 틀어박혀

대한민국의 식육시장을 부시고 세우기를 반복하는 와중에 살고 있던

구리시청의 지역경제과(옛 축산과) 담당을 찾아가

 나의 이력과 하고자 하는 사업에 관한 계획을 설명하게 되었습니다.


담당자 왈, 올해 사업은 이미 배정이 완료되었으니 내년도 사업이 준비되면

 가장 먼저 선정될 수 있게 하겠노라는 것이었습니다.


별 기대도 하지 않고 찾아갔었던 터라 실망하지 않고,

그저 잘 부탁한다는 말만 남기고 나왔었습니다.


보름 정도가 지난 어느 날, 그 시청 담당자로부터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올해 배정받은 사람이 사업을 포기하여 반납하겠다고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해당하는 지원자금을 반으로 나누어 두 사람에게 배정하려고 하는데

올해 안에 점포를 개설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었습니다.


두 말 할 것도 없이 나는 “할 수 있습니다.

이미 준비가 다 되어 있으니 문제없습니다.”라고 답변을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3년 거치 10년 분할 상환, 연리 3%의 유리한 조건으로

 ‘한우전문점 시설 지원’ 자금 1억2천5백만 원을 배정 받게 되었고,

 곧바로 신용보증기금을 찾아가 보증서를 발급받는 절차를 밟았던 것입니다.

한편으로는 점포 임차를 위하여 시장조사와 상권분석을 하였고,

덕현아파트 2천5백여 세대를 배후에 둔 상권으로 다행히 권리금이 없는

 구리시 수택동의 24평짜리 대로변 점포를 구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 통일교 교주인 문 선명씨의 큰아들 명의로 되어있는

건물이었기에 권리금이 없었던 것입니다.


처갓집 장인의 도움을 받아 5천만 원의 임차보증금을 마련하고,

 점포 인테리어를 ‘이음’에게 의뢰하여 정말 예쁜 정육점을 꾸미고 있었습니다.

 “한우전문점 훔메”가 탄생되는 순간이었습니다.


1997년 11월 13일, 정부지원 자금이 통장에 입금되었고,

당시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한창 선거운동이 전개되던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일주일 후 부총리 겸 재정경제원 장관이 TV에 나와 IMF

구제금융 신청을 발표하는 것이 아닌가?


그날 이후 엄청난 국가적 경제위기가 닥쳐 온 것입니다.

당장 고속도로에 자동차가 사라진 것이었습니다.

정책자금을 빌려 준 축협의 담당자와 통화하던 중에 들은 이야기입니다.

 “만일 일주일만 늦었더라면 자금을 못 받았을 것입니다” 라는 것이었습니다.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면서 개업일을 한 달 정도 늦추어

그 해 12월 23일, 드디어 개업식을 거행하게 되었습니다.


1987년 4월 31일, 한국인 최초로 독일의 식육마이스터 자격증을 취득한 지

10년 만에 두 번째 목표였었던 독일식 메쯔거라이의 창업을

 이뤄냈던 것이었습니다.


 모두 200여 통의 초대장을 발송하여 80여 분의 외빈이 다녀가셨으니 당시 업계에서는 많은 관심을 갖고 계셨던 것으로 판단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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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우전문점 “훔메”의 판매장 내부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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